2008. 4. 19. 11:37

무협소설의 역사

무협지는 무(武)로서 협(俠)을 행하는 과정과 인간의 욕망을, 정제된 힘을 통하여 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성인을 위한 동화>이다. 무협지는 황당하지만 나름의 법칙을 가진체 윤전하는 하나의 우주를 보여준다. 때문에 그 세계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빨려드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무협소설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당대 이전 제자백가서에 '협(俠)'을 이야기 하거나 검을 논하기도 하고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역사서에 자객이나 유협의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거론일 뿐 소설은 아니었다. 육조시대 지괴소설(志怪小說)이 훗날 무협소설의 싹을 틔웠지만 본격적인 무협소설은 당(唐)대의 전기(傳奇)에서 출발한다.

화려하면서도 은근한 숨은 뜻을 지닌 당대의 전기소설은 작품이 매우 많고 성취도가 절정에 다달았다. 훗날 단편소설의 선구가 된다고 평해진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고경기](古鏡記), [보강총백원전](補江總白猿傳), [침중기](枕中記), [무쌍전](無雙傳), [앵앵전](鶯鶯傳)---이상 전기. [규염객전],[홍선전](紅線傳), [섭은랑](攝隱랑), [곤륜노](崑崙奴) 등이 있다.---이상 후기.

당대의 전기소설도 전기와 중기의 소설은 괴이난측한 귀신이나 신선의 이야기가 많았으나, 후기로 넘어오면서 무협소설의 선상에 위치하게 될 호사협객(豪士俠客)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두광정(杜光庭)의 [규염객전]은 이런 무협전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단재 신채호는 부여국 건국과 관련하여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그라고 주장하였다. 신파 무협소설의 대가인 김용은 규염객전을 두고 중국 무협소설이 비조라고 평하기도 했다.

현대의 신파 무협소설 작품에선 당대의 전기소설에서 많은 아이템을 차용해 왔는데, 특히 양우생(梁羽生)이나 옥령연(玉翎燕) 등은 [대당유협전], [용봉보차록], [천리홍선] 등에서 많은 부분 전기소설을 차용했다.

송대에는 화본(話本)의 내용 중 일부분이 무협의 성격을 지니는데, 영괴(靈怪), 연분(煙粉), 전기(傳奇), 공안(公案), 박도(朴刀), 곤봉(棍捧), 신선(神仙), 요술(妖術), 기타 등으로 나뉘는 화분 구류(九流) 중에서, 박도와 곤봉이 무협에 속하였다.

명대에는 장회소설(章回小說)이 성행하였다. 이 장회소설의 삼대 분류인 강사(講史), 영괴(靈怪), 호협(豪俠)에서 영괴 방면에 치중하면 [신마소설](神魔소설), 호협 방면에 치중하면 [협의소설]이 된다. 이는 달리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무협소설과 환상과 비검법술(飛劒法術)을 다룬 검협소설로 나누기도 한다. [수호전], [봉신연의], [비룡전전] 등이 현재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소설들이다.

청대에는 협의(俠義) 공안소설(公案小說)이 유명했다. 명대 이래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가 사대기서의 반열에 올라 소설계를 평정했는데, 청대에는 조설근의 [홍루몽]이 나와 일세를 풍미하였다. 청대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포청천으로 알려진 [삼협오의](三俠五義)가 있다.

<민국(民國:1911) 이래의 신구파 무협소설>

남파 무협 소설가로는 화소홍련사(火燒紅蓮寺/불타는 홍련사)로 이름을 떨친 평강(平江) 불초생(不肖牲)이 유명했다. 북파 무협 소설은 남파에 비해 성세는 약했지만 영향력은 지대했으니, 정증인의 [응조왕(鷹爪王)], 환주루주가 환상적인 대작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을 지었고, 리얼리즘 무협의 거장인 백우의 [십이금전표] 따위가 있다.

<홍콩과 대만의 신파(新派) 무협소설>

50대 들어 대륙이 공산화 되면서 무협소설의 장은 홍콩과 대만으로 옮겨지니, 오늘날 신파 무협소설이 형성되게 된다. 신파 무협은 외국소설의 다양한 기법을 흡수하여 [무협], [역사], [언정](言情)의 세 가지를 아우르게 되니 비로소 진정한 무협의 전성기를 열었다 할 것이다. 양우생의 [평종협영록] (萍踪俠影錄)과 김용의 [서검은구록] (書劍恩仇錄)이 경쟁하듯 홍콩에서 발표되면서 신파 무협이 시작되었다. 이후 고룡이나 소일, 와룡생, 사마령, 제갈청운, 동방옥, 온서안, 주우 등의 유명한 작가들이 홍콩과 대만에서 출현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무협 소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무협지는 1960년대 초, 김광주(金光州)에 의해 <정협지>로 소개된 위지문의 [검해고홍](劍海孤鴻)이 최초의 작품이다. 이후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지만 대부분이 와룡생의 이름을 달고 출간된 함량미달의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에 매혹된 독자들의 반응에 자극받은 몇몇 한국작가의 무협작품이 소개되면서 이후 무협소설은 중국 번역물에서 한국 창작물로 대치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질이었다. 기존의 주류 소설 문화에 편입되지 못한 체 만화방의 조악한 유통 문화 체계에 의지하게 되면서, 한 질 일곱 권 기준의 무협지가 출현하게 된다. 이로서 초기 신문에 연재되는 등, 주류 문화에 편입될 수 있었던 무협장르는 하위배설문화로 전락하게 되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무협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기게 되었다. 이렇듯 만화방을 근거지로 하여 조악한 지질이나마 독자를 유혹하는 내용으로 근근히 유지되던 무협지가 한 작가당 한 달에 십 여권 이상을 써대는 최악의 상황으로 전락하면서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1990년 대 들어 전국에 이 만 여군데에 이르던 만화방이 칠 천여군데로 줄어들면서 존립의 위기를 느낀 무협지는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대하역사소설이라는 약간은 웃기는 이름을 달고 일반 소설책으로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폭발적인 도서대여점의 증가와 실력있는 젊은 신세대 작가군이 등장하게 되면서 새로운 무협장르의 중흥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